홈스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팀 이름 앞에 불이 번갈아서 들어온다는 점이다. 동시에 들어올 때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불이 들어온 팀의 타자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고 상대 팀은 수비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기에 사람들이 각 팀이 한 번씩 수비와 공격을 하는 것을 회(이닝)라고 부르며 선공을 초, 후공을 말이라고 하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아르키메데스라도 된 듯이 외친다. ‘유레카!’
얼마 지나지 않아 홈스는 미묘한 변화를 감지한다. 숫자 아래에 숫자가 시간적 간격은 있지만 하나씩 생겨나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게다가 필드 위에 타자가 다이아몬드를 돌아서 다시 홈 플레이트를 밟으면 1로 변한다는 것을. 타자주자 한 명이 들어올 때마다 정확하게 1이 더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두 자릿수는 어떻게 표시하는 것일까?’ 때마침 한 팀이 한 이닝에 10점을 올리자 숫자 9가 A로 변화한다. 10점이 A이면, 11점은 B, 12점은 C… 이렇게 된다는 것은 홈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추리할 수 있을 터.
그리고 각 이닝의 점수가 더해진 것이 R 아래 숫자와 일치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즉, R은 득점(Runs)의 영문 첫머리 글자이다. H는 안타(Safe Hit)를 나타내며, E는 실책(Error), B는 볼넷(Base on balls)을 가리킨다는 것도 알게 된다. 신이 난 홈스는 여성 4인조 친절한 밴드의 ‘나는 천재다’를 흥얼거린다. “나는 천재다. 난 그렇게 믿고 있다.”
목동야구장에 온 지 3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 경기가 끝이 난다. 정확하게 9회에. 야구는 한 경기가 9이닝이며 9회가 끝나고서도 동점일 때 연장전에 들어간다는 것을 홈스는 유추해 낸다. 이 사실을 혼자 알고 있으려니까 입이 근질근질하다. 미국에 유학하고 있는 친구 존 왓슨에게 전화를 한다. “네, 존 왓슨입니…” 왓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홈스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처음 봤는데 9이닝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아 냈다”고 재빨리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왓슨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뚜뚜뚜’라는 소리만 들린다. 왓슨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야구가 처음 생겼을 때는 21점을 먼저 올리는 팀이 승리했다. 근데 그래서는 한 경기가 1, 2시간 만에 끝날 수도 있지만 온종일 하고서도 승패가 결정 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1857년에 지금과 같은 9이닝 제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는 양 팀의 아웃이 같지 않으면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홈 팀(후공을 하는 팀)이 앞선 상황에서 9회 초가 끝나도 경기는 계속됐다. 9회 말 공격이 끝날 때까지. 당연히 끝내기 안타나 홈런도 없었다. 지금과 같은 규칙이 제정된 것은 1880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