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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계속된다

<스크랩> 포수의 세계-야구에서 가장 강인한 남자들

by 독청64 2011.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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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와 뉴욕 메츠에서 감독을 지낸 제프 토보그(Jeff Torborg)는 선수 시절 뛰어난 수비력을 자랑하는 포수였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포수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포수는 필드 위에서 유일하게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포지션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뭔가 특별하다는 뜻이다.”

 

ESPN의 칼럼니스트 팀 커크지안(Tim Kurkjian)은 다음과 같은 말로 포수의 독특한 지위를 설명했다. “야구는 강한 사내들의 거친 경기이지만, 포수는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인한 남자들이다. 그들은 매일 밤마다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포수들은 매 경기 가장 욕을 보는 선수들이다. 그들은 팀의 두뇌이자 동시에 육체노동자다.”  

 

그런가 하면 전 플로리다 말린스 포수 존 베이커(John Baker)의 이런 언급은 또 어떤가. “중요한 상황에서 투수가 연약한 마음 때문에 비난받는 일은 없다. 매를 맞는 것은 포수다. 포수는 못처럼 날카롭고 정신적으로도 강해야 한다. 또 경기의 모든 부면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누구보다도 강한 호기심을 지녀야 한다. 팀의 모든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포수는 그 중요성에 비해 종종 과소평가 받거나, 과도한 비난의 대상이 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포수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포수가 마법을 부려서 형편없는 투수를 에이스로 만들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면에 많은 사람은 포수가 받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간과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쪽이든 포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두꺼운 마스크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얼굴 표정처럼, 우리에게 포수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인 신비한 존재다.

 

초창기 야구에서 포수는 고난의 자리였다.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이 남자답지 못함의 표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진은 초기 야구에서 포수의 모습을 묘사한 20세기 초 미국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 <사진: Hall of Fame>

 

 

그들은 진정한 야구장의 영웅

포수의 자질 - 포수 출신의 두산 베어스 김태형 코치는 “포수의 능력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포구, 송구, 블로킹 등 기본적인 포수 수비를 가리키는데 세 가지 모두 평균 이상은 돼야 주전 포수로 기용될 수 있다. 흔히 공격형 포수, 수비형 포수로 구분하곤 하지만 프로 1군에서 마스크를 쓰는 선수라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수비력은 갖추고 있다. 물론 포수마다 수비력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지만 다른 포지션처럼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타격은 좋은데 기본적인 수비가 안 되는 포수는 일찌감치 다른 포지션으로 전향하기 때문이다.

 

포수의 능력은 보이는 부분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판가름이 난다. 지난날 일본 최고의 포수로 활약한 후루타 아쓰야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좋은 포수의 조건으로 “투수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첫째로 꼽았다. 같은 맥락에서 김태형 코치는 포수의 ‘성품’을 거론했다. “포수가 자기 성질대로 하면 분명히 그 팀은 엉망진창이 된다.” 좋은 포수는 아무리 화가 나고 힘들어도 앞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어도 꾹 참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투수들을 잘 다독이면서 그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투수들이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신뢰감을 주는 든든한 존재여야 한다. 포구와 송구 능력은 그 다음이다. 아무리 뛰어난 '미트질'을 하고 강한 어깨를 갖고 있어도 투수들과의 관계가 나쁘거나 자기 개인 성적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선수라면 절대 좋은 포수가 될 수 없다.

 

그라운드의 육체노동자 - 포수는 야구의 모든 포지션 가운데 가장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된 자리다. 세상에 포수처럼 두뇌 노동과 육체노동, 감정 노동을 한꺼번에 하는 직업은 그리 흔치 않다. 믿기 어려운가? 잠시 눈을 감고 포수가 하는 일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무거운 헬멧과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몸에 달고 홈플레이트 뒤에 쭈그려 앉기부터 시작이다. 자세가 높으면 안 된다.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닿을 만큼 낮게 쭈그려 앉아야 한다. 아마 웬만한 사람은 그 상태로 잠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호소할 것이다. 그런데 포수들은 경기 시간 3시간여 동안 그 자세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수 백 번 이상 반복한다. 게다가 파울팁에 맞아 멍든 팔꿈치, 주자와 충돌해서 놀란 근육, 강속구에 뭉개진 손가락과 마스크에 눌려 일그러진 이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야 땅볼이 나올 때마다 1루를 향해 뛰어가고, 바운드볼을 향해 몸을 내던지고, 파울플라이를 잡으려다 배트에 걸려 넘어지는 건 포수에게 일상이다.

 

그뿐인가. 몸이 힘들면 마음이라도 편하면 좋으련만 포수는 그렇지가 못하다. 일단 경기 시간 한참 전에 동료들보다 먼저 경기장에 나와서 상대 타자들에 대해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최근 컨디션과 타격 폼의 변화를 체크하고 어떤 전략으로 경기를 이끌어 나갈지 결정한다. 그리고 선발 투수의 공을 받으면서 그날의 상태는 어떤지, 요즘 집안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부인과 관계는 원만한지, 투수의 기분이 혹시 투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없는지 점검한다. 바뀐 사인 체계도 확인하고 그에 다른 수비 시프트 변화도 머리에 담아둬야 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더 바쁘다. 포수는 투수의 상태와 타자의 스탠스, 경기 상황을 살펴가며 재빠르게 구종을 선택해서 사인을 낸다.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어디로 송구해야 할지 지시한다. 경기 중간에는 투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비록 인간적으로 맘에 안 드는 녀석이라도 웃으면서 다독거려야 한다. 무서운 감독 옆에 앉아 잔소리도 듣는다. 꼴보기 싫은 심판 비위 맞추는 것도 포수의 일이다. 야수들은 자기 타석과 자기 쪽으로 오는 타구만 신경 쓰면 그만이지만 포수는 경기 전체를 생각하며 계속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3시간 내내 고생해 봐야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투수가 두들겨 맞으면 팬들은 포수 리드가 나빴다고 비난한다. 투수가 잘 던지면 모두가 투수를 칭찬한다. "더러워서 도저히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그래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까. 그들은 진정한 야구장의 영웅이다.

 

흔히 1군 포수가 되기 위해서는 포구, 송구, 블로킹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후 주전 포수를 넘어 특급 포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경험이 필수다. 사진은 비시즌 기간 풋워크 향상을 위해 훈련중인 LG 조인성. <사진: 손윤>

 

 

보호 장비 - 포수의 역사는 각종 보호 장비의 역사이기도 하다. 초창기 물렁물렁한 공을 쓰던 시절에는 포수도 다른 야수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보호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1872년을 전후로 딱딱한 공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공에 대한 ‘두려움’은 타자뿐만 아니라 포수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됐다. 공에 맞으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 명확해진 이상 어떻게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최초의 포수 마스크는 1876년에 탄생했다. 그해 하버드대학 야구팀 포수 알렉산더 팅은 같은 학교의 프레드 타이어의 권유에 따라 펜싱용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섰다. 마스크의 등장은 이후 수많은 포수들의 코뼈와 앞니를 파울팁으로부터 보호했고, 팬들은 조 마우어(Joe Mauer)의 잘생긴 얼굴과 제이슨 켄달(Jason Kendall)의 못난 얼굴을 적어도 경기 중에는 구분할 수 없게 됐다.

 

1997년에는 토론토 포수 찰리 오브라이언(Charlie O'Brien)이 처음으로 하키용 마스크와 비슷한 헬멧을 쓰고 경기장에 나타났다. 이 헬멧은 충격 흡수도 뛰어나지만 파울플라이를 처리할 때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떤 헬멧을 착용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포수 개인의 취향에 달린 문제다.

 

정강이 보호대는 1907년 뉴욕 자이언츠 포수 로저 브레스나한(Roger Bresnahan)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유니폼 바지 위에 천으로 만든 보호대를 달고 경기에 나섰다. 칼럼니스트 조지 벡시(George Vecsey)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보호대는 비겁함의 표시로 여겨졌다. 그 이전의 포수들은 마치 교무실에 불려가는 학생처럼 바지 속에 신문지를 쑤셔 넣곤 했다고. 물론 브레스나한 이후에는 누구도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정강이뼈가 박살나는 고통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배터리 간에 신뢰가 최우선

볼 배합의 신화 - 후루타는 좋은 포수의 첫째 조건으로 ‘투수 리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투수와의 소통’이었다. 두산 김태형 코치도 “투수 리드는 타자가 못 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투수를 잘 다독여서 좋은 공을 던질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일반 팬들은 자기 머리에서 나온 기상천외한 볼 배합으로 타자를 잡아내는 천재 포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 있는 야구인들이 보기엔 볼 배합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 대부분은 결과론에 지나지 않는다. 김태형 코치의 말을 들어 보자.

 

“나도 배터리 코치를 하면서 상황 봐서 어떤 공을 던지라고 하면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한 경기에 투수가 150개의 공을 던지면 10개 정도밖에 안 된다. 10개 남짓 적중했다고 해서 그 포수가 잘나고 똑똑한 포수가 되는 건가? 그럼 나머지 140개의 공은 어떡할 건데. 어차피 위기 상황에서 낼 수 있는 사인은 정해져 있다. 더 낮게 던져라, 땅에 떨어질 정도로 던져라, 바깥쪽으로 빼라. 그게 다다. 그런 거라면 갓 고등학교 졸업한 포수를 앉혀 놔도 할 수 있다.”

 

포수 리드가 잘못돼서 투수가 얻어맞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타자가 예상 외로 잘 쳤거나 투수가 포수 요구대로 던지지 못했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게 투수와 포수의 소통이다. ‘배터리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포수는 머릿속에 타자 팔꿈치 근처로 오는 빠른 볼을 생각하고 사인을 내지만 투수는 단순히 몸쪽 직구를 던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포수는 이 상황에서 빠른 볼이면 100% 삼진이라 확신하는데 투수는 빠른 볼을 꺼림칙하게 여길 때도 있다. “투수가 던지기 싫은 공인데 포수가 우겨서 던지면 절대 힘 있는 공이 오질 않는다.” 김태형 코치의 말이다. 포수 사인에 투수가 고개를 흔드는 일이 많으면 그날은 배터리의 호흡이 맞지 않는 날이다. 이심전심. 포수의 생각과 투수의 생각이 일치해야 한다. 포수가 생각하는 공의 궤적과 투수가 그리는 궤적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투수들이 포수의 리드를 전적으로 믿고 전력으로 공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강팀이다.

 

배터리 간에 신뢰가 구축되면 설사 포수 사인대로 던졌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도 서로 책임전가를 하는 일이 없다. 김태형 코치는 신인 시절 박철순, 윤석환 등 선배들과 주로 호흡을  맞췄다. 안타를 맞으면 선배 투수들은 ‘내가 잘못 던져서 맞았다’며 오히려 김 코치를 위로했다. 반면 안 되는 팀의 투수들은 안타를 맞으면 사인을 낸 포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포수가 타자에게 사인을 알려 주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기까지 한다. 포수도 포수대로 투수에게 책임 전가를 한다. 자기 사인에 따르지 않는 투수에게는 버럭 화를 낸다.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도루 저지 - 모든 리그의 모든 포수들에게 네드 커트버트라는 이름은 저주의 대상이다. 1860년대 어느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키스톤스 소속이던 이 선수는 역사상 최초의 도루를 시도했다. 심판이 1루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자 커트버트는 “어떤 규정에도 1루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말은 없다”고 항변했다. 포수의 업무에 ‘도루 저지’가 새롭게 추가된 순간이다.

 

주자의 도루를 잡아내는 것은 포수가 하는 수많은 일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물론 총알 같은 송구로 주자를 아웃 시키는 순간은 경기 중 포수가 멋있게 보이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강견으로 소문난 어떤 포수들은 주자를 잡아내는데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느라 정작 본연의 임무인 투수 리드를 등한시해서 문제다. 어깨를 뽐내려고 무리한 송구를 하다 악송구를 하거나 변화구 타이밍에 빠른 볼을 요구하는 식이라면 도루 저지율 100%를 기록해도 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도루는 포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잡아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투수의 견제 동작과 투구 동작이 누가 봐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면 ‘앉아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주자를 잡을 수 없다.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이 형편없이 느릴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도루를 내주면 비난 받는 건 투수가 아닌 포수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소녀시대 어깨’, ‘차라리 시구자를 포수로 앉혀라’ 같은 혹평을 들어야 한다. 굴욕과 자기희생은 포수의 운명이다.

 

 

포수의 조건으로 강한 어깨와 도루저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주자를 견제하는 일의 절반은 투수의 몫이다. 아무리 어깨가 강한 포수가 앉아있어도, 투수들이 견제에 소홀하거나 투구폼이 느리면 주자를 막을 수 없다.
<사진: 케이채 kaychae.com>

 

 

두산 김태형 코치는 “포수 송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풋워크”라고 강조한다. 언뜻 생각하면 강한 어깨가 필수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깨는 2루까지 정확하게 던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코스로 공이 와도 내가 공을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자세로 재빠르게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체가 강해야 하고 풋워크가 빨라야 한다. 포수들이 보기에는 발이 느려서 둔해 보이지만 순발력이나 순간 스피드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발이 빠르면 몸 위쪽은 자동으로 따라가게 되어 있다. 간혹 아마추어 포수들 중에는 풋워크는 신경도 안 쓰면서 공만 빨리 던지려고 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래 봐야 2루까지 공이 제대로 날아가지 않는다.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앉아쏴’는 강한 어깨와 하체가 만들어 낸 합작품인 셈이다.

 

 

신뢰감을 주는 포수의 존재는 매우 중요

캐칭 - 캐칭은 포수의 기본 중 기본이면서도 가장 저평가된 부분이다. 포수의 포구가 불안하면 투수도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정작 투수가 중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공을 마음 놓고 던지지 못하게 된다. 공을 건성으로 받고 자주 뒤로 흘리는 포수는 그만큼 투수의 신뢰를 까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타자의 배트에 스친 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한다. 주전 포수가 되지 못한 선수 중에는 파울팁 포구나 특정한 변화구, 타자 몸쪽 공 포구가 불안한 경우가 많다.

 

블로킹 - 바운드볼 블로킹은 포수를 야구장의 ‘3D 직종’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아무리 포수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라도 블로킹을 좋아하는 선수는 없다. 김태형 코치는 “현역 시절 가장 하기 싫은 게 블로킹 연습이었다”고 토로한다. 일단 블로킹 연습은 재미가 없다. 타격처럼 자신이 잘하는 걸 연습할 때는 하는 선수도 흥이 나지만 블로킹은 투수가 잘못 던진 공을 포수가 막아 내는 일이다. 게다가 아무리 땅에 맞고 튄 공이라도 일단 몸에 맞으면 몹시 아프다. 짜증이 확 올라온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포수로 먹고 살려면 막아 내는 수밖에. 바운드볼이 될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요구할 수밖에.

 

포수의 블로킹 능력은 단순히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포수가 블로킹이 약하면 투수의 구종 선택에도 제약이 생긴다. 가령 주자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이 주무기인 투수가 있다고 치자. 타자는 변화구를 던지면 100% 헛스윙 삼진당할 선수다. 하지만 포수가 공을 뒤로 빠뜨릴까 불안해서 투수는 마음 놓고 포크볼을 낮게 던지지 못한다면? 공이 높게 제구될 수밖에 없다. 또는 변화구 대신 어쩔 수 없이 빠른 볼을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타자에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실제로 몇 해 전 국내 한 투수는 수준급의 스플리터를 구사하면서도 실전에서는 거의 던지지 못했고 주자 있는 상황에서 높은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주전 포수의 블로킹 능력 때문이었다. 포수가 새 얼굴로 바뀌고 스플리터를 맘껏 던지게 된 뒤에야 실력만큼의 성적이 나기 시작했다.

 

김태형 두산 코치는 “포수하면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바운드볼 블로킹 연습”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른 선수의 실수를 막아내는 일이니 즐겁게 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진은 블로킹과 풋워크 연습에 한창인 고려대학교 야구부 선수들. <사진: 손윤>

 

 

사인 훔치기 - 투수는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진다. 포수가 공을 던져야 할 지점을 정확하게 정해 주면 투수로서는 제구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사인 훔치기 때문이다. 주자 있는 상황은 물론 주자 없을 때도 포수 사인과 위치를 보고 타자에게 알려 주는 행위가 빈번하다. 어쩔 수 없이 포수들은 가운데 앉아 있다가 투수가 다리를 들면 그때서야 자리를 옮기고 미트를 들어 올린다. 또 가짜 사인을 중간중간 섞거나 일부러 던지려는 공과 반대로 사인을 내기도 한다. 베테랑이나 제구력이 좋은 투수라면 상관없지만 어린 투수들은 컨트롤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상대가 사인을 훔친다는 확신이 들 때 대응 방법은 다양하다. 대놓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경우도 있고 타자 몸쪽 바짝 붙는 볼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는 경기 도중 사인을 바꿔서 상대의 사인 훔치기를 역이용해 혼란을 주는 방법도 있다. 과거 몇몇 포수들은 아예 노 사인으로 공을 던지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센스와 순발력이 뛰어난 포수들만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포수가 골치 아픈 것은 마찬가지다. 김태형 코치는 “포수들이 야구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말로 사인 훔치기 풍토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감독의 분신 - 야구는 관중석에서 볼 때와 덕아웃에서 볼 때, 그리고 실제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로 뛰면서 볼 때가 다르다. 필드 바깥보다 안에 있을 때 더 잘 보이는 내용이 분명히 있다. 투수의 구위에 대한 판단이 그런 예다. 투수의 볼에 힘이 떨어지진 않았는지, 지금 컨디션이 어떤 상태인지는 덕아웃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럴 때 감독들은 타임을 요청하고 포수를 불러 의견을 들어 본다. 포수가 감독의 ‘아바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 많고 신뢰감을 주는 포수의 존재는 중요하다. 직접 사인을 내지 못하고 매번 벤치 쪽을 쳐다보는 포수는 투수들에게 신뢰를 받기 어렵다. 또한 포수로서 성장도 늦어진다. 벤치-포수-투수를 거치는 사인보다 포수와 투수가 직접 주고받는 사인이 더 신속하고 원활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면에서 SK 박경완은 대단한 포수다. 어느 팀의 코치는 “박경완은 감독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전권을 갖고 경기를 운영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래서 투수들이 절대적으로 박경완을 신뢰한다. 상대팀에서 보면 감독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볼 배합이 나올 때도 많다. 투 볼, 스리 볼에서도 변화구를 던지게 하니까. 그만큼 팀에서 신뢰를 주고 무게감이 있다는 얘기다.”

 

포수의 권한은 수비 시프트와도 연결된다. 만일 포수는 우측으로 타구가 가는 볼 배합을 하는데 수비진이 좌측으로 움직인다면? 포수가 원하는 대로 볼 배합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잘못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포수가 전권을 가진 팀은 수비 위치를 정할 때도 포수에게 상당 부분 힘을 실어 준다. 포수와 수비 코치, 전력분석팀이 사전에 미팅을 통해 어떤 전략으로 경기를 진행할 것인지, 타자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대화를 나눈다. 선수단에서 감독과 가장 자주 대화를 나누는 선수도 바로 포수다. 국내에서 포수 출신 명감독이 많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포수의 타격 - 아무리 수비가 탄탄한 포수라도 타율이 1할대라면 팀에 보탬이 되기는 어렵다. 김태형 코치는 “포수들에게 방망이에 신경 쓰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방망이가 잘 맞아야 리드도 신나서 잘되는 법이다. 두 타석 삼진당하고 들어온 포수가 수비가 제대로 되겠나.” 물론 과욕은 금물이다. 어떤 포수들은 자기 타율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도 다음 타석을 생각한다. “포수가 그런 식이면 투수들이 먼저 알아챈다.” 김태형 코치의 말이다. “저 인간이 또 방망이 안 맞으니까 리드를 대충대충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투수가 그런 생각을 갖고 던지는데 어떻게 타자를 이길 수 있겠나.”

 

희생정신 - 프로야구 선수는 누구나 자기 얼굴이 신문과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길 바란다. 하지만 포수는 경기의 절반 가까운 시간 동안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얼굴 노출로 따지면 '턱돌이'보다 특별히 유리할 게 없는 처지다. 게다가 포수는 아무리 잘해 봐야 본전이다. 못하면 온갖 욕을 혼자 다 먹지만 잘하면 그 공은 투수의 몫으로 돌아간다. 감독들도 결과가 나쁠 때는 투수 대신 포수를 질책한다. 김태형 코치는 “투수는 매우 섬세한 포지션”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투수를 꾸중하면 그 다음에 좋은 투구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포수들은 자신이 투수 대신 욕을 먹고 비난받는 일을 기꺼이 감수한다. 야구가 생긴 이래 늘 그래 왔다.” 호투한 투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종종 “아무개 형의 리드가 좋았다”라고 말하는 건 포수의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답례다.

 

포수는 자신이 돋보이려고 해서는 안 되는 포지션이다. 타석에서 다른 선수들이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해 구시렁대고 비난해도 포수는 절대 그렇게 해선 안 된다. 곧바로 다음 수비에서 자기 팀 투수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포수가 지나치게 멋있는 리드를 하려고 해도 곤란하다. 자기가 생각할 땐 아무리 기가 막힌 볼 배합이라도 투수가 던질 수 없는 공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철저하게 투수의 능력에 따라 공을 유도해야 한다. 자기가 멋있게 보이려고 투수가 자신 없어 하는 공을 계속 요구하는 포수는 포수도 아니다.

 

경험이 필요해 - 어떤 팬들은 갓 프로에 입단한 고졸 포수의 능력에 과도한 환상을 갖는다. 몇 년 전 한 구단은 주전 포수가 빠지고 2군에 있던 포수가 올라와서 마스크를 쓴 몇 경기 동안 ‘일시적으로’ 팀 방어율이 좋아졌다. 그러자 팬들은 투수진의 부진이 기존 주전 포수의 리드가 나빴기 때문이니 투수 리드가 좋은 신인 포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게 과연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딱 7경기였다.” SK 김정준 전력분석 코치는 지난 2009년 박경완의 자리를 정상호가 대체했을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는 상대 타자들이 적응하지 못했다. 생소하니까. 박경완이면 바깥쪽으로 갈 타이밍에 몸쪽 공이 들어오니까 대응이 안 됐던 거다. 하지만 몇 경기 지나고 적응이 되자 바로 난타당하기 시작했다.” 두산 김태형 코치도 “신인은 아무 것도 모르고 달려들기 때문에 처음에는 통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팀으로서는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도 있고, 또 신인들은 파이팅이 좋아서 투수로서는 기운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즌은 133경기다. 한 시즌을 온전하게 버텨 내려면 아무 것도 모르는 저돌성이나 ‘생소함’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포수에게는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김태형 두산 코치는 현역 시절 정상급의 수비력을 갖춘 포수로 평가 받았다. 김 코치가 뛰던 시절 두산(OB)에는 박현영,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홍성흔 등 좋은 포수 자원들이 넘쳐났다. 현재 김 코치는 두산 퓨처스팀에서 포수 왕국의 명성을 재건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2011년 현재) <사진: 손윤>

 

 

김태형 코치는 “처음엔 나도 3년 동안 멋모르고 헤맸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고 경기 경험이 많아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라. 도루도 어깨가 강하다고 다 잡는 게 아니었다. 요령이 있다. 상대가 뛰겠다 하는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 그런 게 생겼을 때 도루 잡는 능력도 더 좋아진다.” 주전 포수를 키우려면 시간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야구계에서 가급적 고졸보다 대졸 포수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에 일단 입단하면 2군에서 포수가 실전 경험을 쌓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대학교 4년 동안 착실히 실전에 나서면서 포수로서 경험을 갖추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정상호는 초반의 상승세와 이어진 침체기를 거치면서 포수로서 급격히 성장했다. 그리고 시즌 막바지 팀의 19연승 신기록을 이끌었다. 박경완의 백업에만 머물렀다면 정상호의 포수로서 성장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박경완 역시 프로에서 주전급으로 성장하는 데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타고난 천재 포수는 없다. 좋은 포수는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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